왜 문재인 대통령은 무지개를 잡으려는 걸까?









지난 2005년 경주에서 아들 부시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간의 한미 정상 회담이 있었다.

당시 노무현의 입장은 북한의 군사적 불안감을 없애야 한다며, 한국 전쟁 종전 선언과 평화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미국의 입장은 명확하게 달랐다.

부시는 "북한 정권이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불가역적으로 핵 개발을 포기해야만" 평화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양 정상의 이런 대립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압박하면서 터져나왔다.

기자 회견에서 노무현은 "조금 전에 말씀 하실 때 한반도 평화체제 내지 종전 선언에 관해서는 말씀을 빠트리신 것 같아요.(중략) 그렇죠. 매우 똑 같은 얘기인데 김정일 위원장이나 한국 국민들은 그 다음 얘기를 듣고 싶어합니다." 라며, 부시 대통령을 도발했다.

부시 대통령과 미국 관리들은 당혹할 수 밖에 없었다.

부시 대통령은 그러나 '더 이상 분명하게 얘기할 게 없다 (“I can’t make it any clearer, Mr. President”)'며 노 대통령의 도발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김정일이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핵무기를 없애야만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낼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사건 이후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노 대통령이 그 순간 얼마나 괴상하게 보였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이해하기 어렵고, 예측하기도 쉽지 않은 인물로, 그 이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이해하긴 참 힘들었다. 그는 한국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내게 강의하듯 말하는 등 종종 반미적인 모습을 보였다. 2007년 9월 (호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그의 엉뚱한(erratic) 성격을 드러낸 사건이 있었다. 회담이 끝나갈 때쯤 노 대통령은 부시에게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기자들에게 밝혀 달라고 부탁했다. 그건 2005년 9·19 공동성명에 이미 들어 있어 새로울 게 없었다. 부시는 기자들에게 그대로 말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끼어들어 “한국전쟁 종전 선언을 언급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않으냐”라고 물었다. 부시는 깜짝 놀라 자신의 발언을 되풀이했다. 노 대통령은 좀 더 분명히 말해 달라고 졸랐다. 모두가 어리둥절해 했다. 통역자도 놀라 통역을 중단했다. 부시는 기자회견을 끝냈다. 노 대통령은 그게 얼마나 괴상한(bizarre) 상황이었는지 모르는 듯했다. 노 대통령의 예측하기 어려운 행동 때문에 솔직히 나는 한국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출처: 중앙일보] “노무현, 부시와 회담 때 괴상한 언행”






당시 로버트 게이츠 국무장관은 회고록을 통해 노무현을 "반미적이며, 정신 나간 인물(Anti-American and crazy)"이라고 혹평했다.

부시 행정부가 노무현 정권을 매우 비판적으로 보았던 시각을 읽을 수 있다.

아무튼, 북핵 문제 처리에 대한 미국의 일관적 원칙은 "북핵을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비가역적으로 폐기"하는 것이며, 이 원칙은 최소 부시 행정부 때부터 정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원칙은 미 행정부 뿐 아니라, 미국 의회, 유럽 연합, 유엔 등도 마찬가지이며, 트럼프 행정부 역시 수도 없이 밝혔던 사항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붙여, 북한의 핵동결에 어떤 보상도 협상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고,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과 비핵화 협상을 동시에 진행하는 "병행 협상"은 북한의 비핵화 지연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며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즉, 박근혜 대통령은, 설령 북한이 핵동결을 한다고 해도, 보상해서는 안되며, 비핵화에 전념하여야할 뿐, 평화 협상을 고려해서는 안된다고 못 받은 것이다.

이 같은 입장은 지난 3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통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전달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9월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소집한 NSC의 모두 발언에서, "외교안보 부처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이 핵미사일 계획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방법으로 포기하도록 외교적 방법을 강구해 나가길 바랍니다."라고 발언하였는데, 여기서 말한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방법"은 바로, 미국 정부의 북핵 처리 원칙을 반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미 양 정상은 지난 1일 전화 통화를 한 후 각자 통화 내용을 공개했는데, 청와대의 발표는 다음과 같았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최대한의 제재와 압박을 가함으로써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북한으로 하여금 대화의 장으로 나와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재확인했다."

여기서 언급한 "최대한의 제재와 압박"은 지난 4월 17일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대북 전략이라며 발표한 “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 (최대 압박과 개입)”을 원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처럼 미국의 대북 정책, 북핵 해결 원칙을 반복해 인용하며 (마치 자신의 대북 전략인 것처럼) 사용하는 이유는 뭘까?

쉽게 생각하면, 미국의 대북 정책을 한국 정부도 따라가고 있다는 사인을 보내고 싶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한국 정부도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운 정책과 원칙을 반복하며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문재인 정부를 보는 시각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트럼프 대통령이 3일 공개한 트윗에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을 통해 "한국은 내가 말한 것처럼, 북한에 대한 유화적 발언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알아가고 있다."고 적은 것이다.

그럼, 트럼프 대통령은 언제 이같은 발언을 문 대통령에게 했을까?

CBS 뉴스가 이 의문의 단초를 제공했다.

지난 1일 양 정상 간의 전화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북한으로 하여금 대화의 장으로 나와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은 북한과 대화할 때가 아니다. 국제사회 모든 국가가 북한 도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와 평화 협상 (혹은 대화를 통한 해결)을 병행할 수 없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주장을 수용하였고 이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듯, 지금 북과의 대화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무지개 같은 허상일 뿐이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도 그랬고, 또 현재 대통령도 그 허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건 왜일까?


2017년 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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