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 센터 유감






외상센터는 전가보도(傳家寶刀)도 아니고 마술 지팡이도 아니다.

죽음이 코 앞인 환자가 외상센터만 가면 척척 살아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반대로 외상 환자가 외상 센터에 가지 못했기 때문에 죽는 것도 아니다.

외상 의학이란, 의학이 전문화 세분화되면서 진화된 별도의 한 영역일 뿐, 외과의에게 외상은 기본이나 다름 아니다.

만일 외상 수술이 외상 외과 만의 영역이라고 한다면, 역설적으로 외상의나 외상 센터가 전혀 없었던 2000년 초반 이전에는 그럼, 외상 환자는 모두 다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그냥 죽어갔을까?

아니다. 외과의가 있는 어느 병원에서나 외상 환자를 치료했고, 중증외상 환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상 센터가 부족해서 외상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다”는 어리석은 선동일 뿐이다.

** 기사에는 “여전히 수많은 중증외상환자 중 단 30%만이 외상에 특화된 권역외상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나머지 70%는 제대로 된 치료조차 못 받을 확률이 높다”고 적고 있다.

이런 선동이 먹힐 수 밖에 없는데는 의료계도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의료계 특히 대형병원들의 경영에 타격이 왔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한 각가지 방법이 도입되었다. 의약분업 때문에 대형병원이 무너졌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는 기존에 있었던 의료기관 차등 종별가산율, 의료기관 종별 본인부담률 차등, 선택진료비 등등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건, 사실 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암 정책은 민노총 즉, 보건의료 노조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정책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암 정책은 암 환자의 본인 부담율을 5%로 현격하게 낮추는 것이 골자이므로, 보편적 복지의 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보건의료 노조를 핵심적으로 구성하는 간호사들의 사측인 병원, 그것도 대학병원 등 대형 병원으로써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암 정책은 사망율 1위의 질환군의 병원 문턱을 확실히 없애는 것이므로, 환자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서울을 비롯한 대형 병원들은 경쟁적으로 병동을 늘리고, 몸집을 키우게 되었다.

특히 소위 5대 메이저 병원들이 병상을 대거 늘리자, 이들 병원은 진공 청소기처럼 환자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고, 반대로 중소 병원, 특히 지방 병원들은 대학병원마저 환자 이탈로 경영난을 겪게 되었다.

결국, 이들 대형 병원 병상이 차야, 주변 병원도 차기 시작하는 등, 의료전달체계는 더 개판이 되었고, 각종 기형적 현상이 난무하게 되고, 의료 정책, 보험 정책은 더욱 더 왜곡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암 정책은 환자 수급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다.

고용과 교육, 의료 공급의 왜곡도 야기했다.

우선, 병상을 대거 늘린 대형병원들은 환자 뿐 아니라, 간호사, 의료기사, 의사들 역시 빨아들이기 시작해, 지방에서의 고용난 특히 간호사 고용난은 극심해졌고, 대형 병원들이 ‘돈 되는’ 암 질환에 매몰되면서 모든 외과의들이 암 수술에 전념하게 되면서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외상이 홀대받게 된 것이다.

외상이 홀대받은 건, 외상 환자는 암 환자와 달리 환자 공급이 지속적 안정적이지 못하고, 외상 환자에 대한 행위가 거듭될수록 적자가 가중되기 때문이다.

병원이 대형화되고 세부 전문의 과목이 늘면서, 암 수술을 전문적으로 하는 의사는 외상 수술은 ‘당연히’ 안하는 것으로 인식되게 되었고, 그러니 멀쩡한 대학 병원에서도 외상 수술을 할 의사가 없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대학 교수들이 외상을 도외시하자, 전공의 역시 외상에 대한 경험이 줄어들게 된 측면도 있다.

그러다 2011년 석 선장 사건이 생긴 이후 비로소 외상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이른바 외상 센터라는 것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이것이 가능했던 것도 응급의료기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외상 센터는 중증 외상 환자를 진료하는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중증 외상을 해결하는 모든 방법은 아니다.

16개 센터로 5천만 국민의 외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외상 센터는 그 나름대로의 포지션을 정해 그 역할을 하도록 하고, 더 많은 종합병원, 대학병원, 중소 병원에서 적극적으로 외상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바침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외상 수술, 진료 수가의 현실화, 암 수술에 매몰되지 않는 교육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외상 환자가 들이닥치면 자다가도 달려나와 수술한 의사들이 수 없이 많다.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밤새 수술하고,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지켰던 그 의사들의 헌신이 걸레처럼 취급받는다면, 누가 달려나와 수술하겠나.

수술한 환자가 죽으면 멱살잡히고, 면허가 위태로울 수 있는 사회 구조에서 그들에게 신념이나 환자에 대한 헌신 따위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이다.

심폐소생술 하다가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고발하고, 외상 환자 옷을 찢었다고 물어내라고 하는 게 한국 의료의 현실인데,

이를 개선하지 않은 체, 제대로 된 외상 치료를 받고자 하는 건, 어리석을 뿐이다.


참고 자료

‘SBS스페셜’ 중증외상 환자 위한 권역외상센터, 제 역할하고 있나?


2017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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