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것은 가 버리고 새 것이 온다.









최근의 딜레머 중의 하나는 컴퓨터 사용에서의 한/영 전환이다.

컴퓨터를 쓰기 시작한지 34째인데, 34년 만에 최대 위기에 처해 있다.

최초로 사용한 워드 프로세서(Word processor)는 1982년에 만들어진 “한글 워드프로세서 버전 1.0”이었는데, 8비트 apple II에서 구현되는 것이었다. 84년 초 쯤에 이 프로그램을 손에 넣어 써 볼 수 있었다.

후에, 이 프로그램의 개발자가 서울북공고 2학년 학생이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당시 8비트 애플 II의 복제품을 보급했던 삼보가 컴퓨터 보급을 목적으로 개발을 보조했고, 그 학생은 이 프로그램이 무상으로 보급되기를 원해 장학금 명분으로 50만원에 이 프로그램을 삼보에 넘겼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은 소프트웨어적으로 한글을 구현했고, 가로 20자, 세로 12줄을 입력할 수 있었다. 출력도 가능했다고 하지만, 당시에는 프린터가 없어 실제 출력을 해 보지는 못했다. 

이 프로그램의 한영 전환키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후 실제 업무(?)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워드프로세서는 역시 삼보컴퓨터가 만든 “보석글”이었다. 보석글은 16비트 IBM-PC/XT 용 프로그램이며, T/maker research라는 회사 제품(심지어 이 제품은 단순히 워드프로세서가 아니라 통합 패키지 흉내를 내고 있었다.)을 한글화하여 만들어졌고, 보석글 II, 보석글 V 등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보석글은 소프트웨어적으로 한글을 표현하는 한글 에뮬레이터를 가지고 있었는데, 한글 모드는 Alt + F9, 영문 모드는 Alt + F10을 사용했다.



보석글




IBM PC/XT는 (당연하지만)자체적으로 한글을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처럼 에뮬레이터를 통한 소프트웨어 방식을 쓰거나, PC/XT의 그래픽 카드인 허클리스 카드에 한글 폰트가 들어간 ROM-BIOS를 넣어 하드웨어 적으로 한글을 구현하는 이른바 ‘한글 카드’를 통해 일부 영문 소프트웨어에서 한글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당시 유명한 한글 카드로는 한글 도깨비, 한메한글 등이 있다.

개인적으로 보석글 애호가이어서, 초기 보석글 버전을 85년부터 89년 아래한글이 나올 때까지 너무나 잘 썼다. 

89년 우연한 기회에 이른바 아래한글 최초 버전 즉, 상품화하기 전에 만들어진 아래한글 버전 1.0을 접할 수 있었는데, 아래한글은 자체적으로 한글 폰트를 내장하고 있었고, 이른바 WYSIWIG (What you see is what you get) 개념을 도입하여 보석글을 썼던 나로써는 말 그대로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바로 그 초기 버전이 Epson이 대세이었던 당시에 흔하지 않았던,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136 칼럼 도트 프린터(PC/24이었나?)를 지원해 주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한/영 전환을 Shift + Space 키로 토글하는 버릇이 든게 아마도 이 때부터인 것 같다. 당시 아래한글은 Shift를 누른 상태에서 Space를 눌러 한/영 전환을 했다.

그러니까, 89년 이래 2017년까지 거의 30년 가까이 변함없이 이 방법으로 한/영 전환을 했다. 아래한글이 Shift + Space로 한/영 전환을 한 건, 당시에는 83 키보드 혹은 84 키보드를 널리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IBM이 만든 84 키보드를 애호해서 여러 개를 사두고 2000년 초반까지 이걸 썼다. 이 키보드는 무겁고, 튼튼하고, 커다란 메카니컬 키보드로 마치 타이프라이터를 치는 것 같은 타격감이 좋다. 







지금 널리 쓰이는 건 106 키보드이다. 

106 키보드에는 당연히 한/영 전환 키가 있으므로 이 키로 전환하며, 이 키보드가 보급되면서 대부분 한/영 전환 키를 사용하는데, 이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키보드 설정을 “PC/AT 101키 (종류 3)”으로 변환하여 여전히 Shift + Space로 한/영 전환을 해 왔다.

특히 병원 외래나 병동 컴퓨터를 이런 식으로 바꾸어 두고 썼는데, 최근 병원 전산망 보안이 강화되기 시작하면서 아예 101키 드라이버를 삭제해 버려, 어느 순간 이 같은 키보드 설정이 막히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줄곧 IBM PC와 윈도우즈를 쓰다가 지난 2014년부터 맥북을 쓰기 시작했는데, 맥 OS의 경우, Cmd + Space 로 한영 전환을 하였는데, 이 역시 적응이 안되었지만, ‘구름’이라는 키보드 에뮬레이터를 이용해 종전과 같이 Shift + Space로 한/영 전환을 할 수 있게 됨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또, 최근에는 아이패드 프로와 악세서리로 나오는 키보드를 사용해 주로 글을 쓰는데, 이건 또, caps lock 키가 한/영 전환키로 작동한다. (macOS 하이시에라로 업그레이드 된 맥북이나 아이맥도 같은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제각각 한/영 전환 방식이 달라지면서 머리가 혼란해지고, 타이핑 에러가 빈번해지며, 타이핑 속도도 떨어지게 된 것이다. 아, 젠장!

돌파구가 없다.

’낡은 것은 가 버리고 새 것이 온다.’

어느 덧 낡은 것이 되버린 고약한 느낌이다.






2017년 10월 31일




.

No comments

Theme images by fpm.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