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항암제로 본 우리나라 의료의 문제점







우리 몸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물질이 아닌 것이 체내로 들어오면 이를 제거하기 위한 기능을 가진다. 이를 면역이라고 한다.

면역 기능은 체내로 들어온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해서도 작용하지만, 세포 분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돌연변이 세포에 대해서도 작용한다. 이 돌연변이 세포가 자라면 악성 종양, 즉 암이다. 즉, 많은 암세포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이미 면역 기능에 의해 스스로 제거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암세포는 면역 기능에 의해 제거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면역 세포를 무력화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인 PD-L1 (Programmed death-ligand 1)인데, 이 단백질은 암세포의 표면에 있으며, 대표적 면역 세포인 T 세포의 PD-L1 수용체와 결합해 T 세포가 암세포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한다.

이 기전을 이용해 만든 것이 면역항암제이다. 그래서, 이를 면역관문 억제제(Immune-checkpoint inhibitor)라고 한다.

이미 1세대 세포 독성 항암제, 2세대 표적 항암제 등이 암 치료에 사용되어 왔는데, 이들의 문제는 작용 기간 짧고, 부작용이 크며, (표적 항암제 경우) 내성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화두가 되고 있는 면역항암제 옵디보, 키트루다 등의 경우 상대적으로 작용 기간이 매우 길고, 부작용은 매우 적다. (내성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비하다)

또, 작용 기전 상 적용할 수 있는 암의 종류가 많다. 즉, 폐암 치료제가 피부암(흑색종) 치료에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키트루다는 13가지 암, 옵디보는 30여 종류의 암에 대한 임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이처럼 면역항암제는 암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치료제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가격이다.

통상 이 면역항암제 치료에 연간 1억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지난 해 8월 말, 비소세포폐암에 한해 옵디보와 키트루다 사용에 건강보험 적용(급여 적용)을 하여 본인부담금의 5%만 내도록 결정했다. 이 경우, 약값은 연간 400 만원으로 줄어든다.

문제는 이를 결정하면서, 급여 적용에 매우 많은 규제 사항을 두고, 면역항암제 비급여 사용을 강력히 제한했다는 것이다.

우선, 기존의 항암제를 사용한 치료에 실패한 경우, 재발된 경우에만 면역항암제의 급여를 허락했다.

이런 종류의 암을 가지고 있다고 다 면역항암제 치료를 급여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면역항암제의 기전의 특성 상 PD-L1 을 바이오 마커로 사용해 발현율이 50% 이상인 경우(옵디보), 혹은 10% 이상인 경우(키트루다)만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적응증에 해당해도 모든 병원에서 면역항암제 투여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자력의학원과 암센터가 있거나 지역응급의료센터 이상의 응급의료기관을 가지고 있는 종합병원 중, 상근하는 혈액종양내과, 감염 또는 내분비내과, 병리과 전문의가 각 1인 이상인 기관에서만 가능하다.

이에 해당하는 의료기관은 94개인데, 이 허가 범위를 초과하여 폐암에서 면역항암제를 쓰거나, 이미 써 왔던 환자들은 다학제위원회가 구성된 의료기관에서만 치료받을 수 있다. 즉, 다학제위원회가 없는 병원에서 면역항암제를 써 왔다면, 병원을 옮겨야 한다. 물론 약값은 전액 본인 부담이다. 현재 다학제위원회가 설치된 병원은 71곳 뿐이다.

또, 면역항암제 투여 기간은 1년만 (최대 2년) 급여 인정된다.

이렇게 규제 사항을 둔 이유는 명확하다.

면역항암제는 brand new 이므로 효능에 대한 검증이 여전히 미비하고, 내성 발현 가능성에 대해 불명확하며, 부작용에 대해서도 여전히 잘 모른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제한없이 급여 적용할 경우, 재정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사실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치료에 극적 효과를 노릴 수 있고 (PD-L1 바이오 마커 발현율이 높을수록 효과가 탁월), 부작용에 대비할 수 있으며 (지역응급의료센터 보유 병원), 남용을 방지하고 권위있는 의사만 쓰도록 (암센터 병원)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어처구니 없는 주장은 정부만의 주장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항암치료를 하는 전문가 집단이 주장한 사항이기도 하다.
(2017 대한폐암학회 춘계학술대회에 참여한 의사들은 4기 폐암환자에게 '면역항암제'를 사용할 의향은 있지만, 약 20%의 환자만이 효과를 본다는 점을 감안해 'PD-L1 바이오마커' 검사를 전제하겠다는 의견이 공통적이었다.)

그러나, 암환자나 그 가족들의 입장은 정부의 규제, 의사들의 입장과는 다르다.

이들은 실날같은 가능성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보려고 한다.

면역항암제의 경우 암세포의 면역 회피 기능을 억제한다는 작용 기전상 어떤 암에 어떤 효과가 있을지 사실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

실제 PD-L1 바이오마커 발현이 매우 낮아도 환자의 10% 가량에서는 효과를 본 경우가 있으며, 다른 여러 암에서도 치료 효과가 있었다.

또, 암진단 후 굳이 각종 부작용에 시달려야 하는 화학항암제 사용을 건너뛰고 곧 바로 면역항암제 치료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

환자들의 요구는 명쾌하다.

적응 범위를 확대하라는 것이다. 즉, 비소세포폐암에 국한하지 말고 다른 암에서 쓸수 있게 하고, 초 치료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건보 재정이 문제라면, 비급여로 치료받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요구가 비등하자 정부 (심평원)는 지난 해 9월 다른 암종에 대한 오프라벨 사용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옵디보의 경우는 위암, 간세포암, 항문암, 키트루다 경우 위암, 비호지킨림프종, 직결장암에에서 비급여, 즉 전액 본인 부담 하에 면역항암제 사용을 승인한 것이다.

또 그외 암에 대해서는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그러나 사실 다른 암에서 비급여 치료를 받을 경우, 각 의료기관의 다학제위원회를 통과한 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허가초과 약제(오프라벨)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절차를 밟는데 보통 3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절차를 무시하면 임의비급여로 간주된다. 이 경우, 부당청구로 분류되어 진료비 환수, 업무정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그러니 병원은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보아도 처방할 수가 없다.

뒤늦게 심평원은 면역항암제 허가초과 사후승인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혈액종양내과 3인, 관련 소아과 1인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이 위원회가 구성될 수 있는 병원은 기존 71개 병원에서 30여개로 대폭 준다.

이 논란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jtbc의 보도에 집중해 보자.

이 보도에 나온 사례는 유방암과 담낭암의 경우이다. 모두 정부가 정한 6개 암종에 해당되지 않는다. 담낭암 환자의 경우 오프라벨 처방 승인을 받아 본인 부담으로 치료받은 것으로 보인다.

면역항암제 논란은 치료 재료, 신의료기술의 급여화가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가져다 주는지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급여가 되면 무조건 규제하고 통제하려고 들면서 부작용이 생긴다.

하물며 비급여 항목의 경우, 건보재정과 무관하며, 정부가 굳이 규제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비급여까지 정부가 규제하려는 건, 모든 걸 다 정부가 참견해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면역항암제라는 것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이런 논란도 없다. 그러나 신의료기술, 치료제의 개발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환자들은 그 때마다 그 혜택을 원할 것이고, 가급적이면 자신이 먼저 혜택을 받길 원할 것이다.
면역항암제과 유사한 논란이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 때문에, 전세계 모든 국가들이 대비책을 만들어 둔다. 그게 바로 private medical sector (민간의료영역)이다.

민간의료영역을 갖는 국가들의 정부는 의약품 사용에 대한 허가에만 관여하고, 민간 영역에서 이를 사용하는 것을 규제하지 않는다. 민간 영역의 의료 행위는 민간 보험이 보험 적용을 결정하므로, 이는 가입자와 보험사의 문제일 뿐, 병원이 개입하거나 제재받을 이유도 없다.

문재인 케어는 더 큰 문제이다. 왜냐면, 이는 모든 비급여를 급여화하겠다는 원칙이므로, 현실적으로 급여 적용하기 어려운 영역마저도 예비급여란 이름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면역항암제 역시 대부분의 암에서 예비급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말이 급여지 사실은 환자가 약값의 거의 대부분을 내게되면서 적응증 등에 대해 더 강력하게 규제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의료 영역에서 공공영역, 민간영역이 공존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있다면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이렇게 투 트랙을 가지고 가는 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면역항암제는 우리나라만 쓰는 것이 아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새로운 치료제 속속 개발되는 등 의료 환경이 바뀌면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 '내 돈 내고 내가 치료받겠다'는데, 이렇게 어려운 이유가 뭔지 생각해 봐야 한다.


2018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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